한국은 여전히 요원해 보이지만, 전 세계적으로는 국경을 이동하면서 자유롭게 일하는 디지털 노마드 형태의 노동자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한국 정부에서도 2024년부터 디지털 노마드 비자를 신설하면서 체류형 관광 시장에 뛰어들었죠.
마침 세계 최대 규모의 디지털 노마드 커뮤니티 노마드 리스트(Nomad List)는 2024년 시장 통계를 발표했는데, 자사의 유료 회원 3만명을 항목 별로 분류한 리포트입니다. 그래서 글로벌 시장 현황을 짐작해볼 수 있는 재미난 통계가 많더라고요. 이를 참고하고 최근 발표된 여러 리포트의 통계를 더해서, 흥미로운 지점 몇 가지를 정리해 보겠습니다.
시장규모 3500만 명, 그 중 절반이 미국인
‘디지털 노마드’라는 개념과 용어는 90년대부터 등장했습니다. 통신환경과 디바이스의 진화 등 기술 변화에 따라 미국에서 새로운 라이프스타일로 만들어진 용어였지만, 사실 대중화된 개념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코로나를 겪으면서 처음으로 리모트 워크를 경험한 사람들이 크게 늘어나면서 시장이 폭넓은 층으로 확대되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따라 디지털 노마드를 위한 여행, 보험 등 각종 서비스, 코워킹과 코리빙 공간 등 연관 서비스가 증가하는 추세입니다.
‘노마드 리스트’ 창업자인 피터 레벨은 2028년부터 2035년까지 수십 억 명이 향후 자국 밖에서 리모트 워크로 일하는 삶을 선택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습니다. 덧붙여 노마드 리스트는 2022년 시점 디지털 노마드의 시장규모는 글로벌 3500만명, 연간 지출액은 7877억 달러(900조)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중 미국의 디지털 노마드는 1730만명으로 거의 절반에 달합니다.
디지털 노마드의 프로필과 최근 변화
노마드 리스트의 2023년 10월 기준 통계에 따르면 연령대로는 30대가, 성별은 남성이 60%로 주류를 이룹니다. 독신이 65%, 연수입 평균은 12만3542달러(약 1억 5천만원 선)라고 하네요.
학력은 학사가 54%, 석사가 33%로 고학력에 속합니다. 일하는 방법은 풀타임 42%, 홈 오피스가 61%이고요. 한 도시의 체류일수 평균은 7일로, 같은 나라에 체류하는 기간은 7~30일이 59%에 이릅니다. 인기 도시 순위는 태국의 방콕, 스페인의 바르셀로나, 미국의 마이애미, 포르투갈 등 대륙 별로 골고루 퍼져 있습니다. 또한 성별마다 선호하는 도시도 조금씩 다르니 노마드 리스트의 보고서를 참조해 보시면 좋습니다.
미국에서는 이미 디지털 노마드가 완전 자리를 잡으면서 새로운 움직임도 나오고 있는데요. 지역에 기여하려는 의식을 가진 ‘슬로마드(슬로우 노마드)’라고 불리는 새로운 노마드들은 지역에 사는 감각으로 같은 장소에서 오랫동안 보내고, 지속 가능한 숙박 시설에 체류하는 특징을 가집니다. 또한 개인적으로 친환경 프로젝트에 투자하거나 공헌하려는 특징도 있습니다 .
론리 플래닛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슬로마드의 1/3은 1~3개월마다 이동하며 55%가 한 곳에서 일한다고 하네요. 업종은 IT보다 좀더 다양한데요. 컨설팅, 건축과 인테리어 디자인, 디지털 마케팅 부문의 종사자가 많고요. 월수입은 미국인 응답자의 50% 이상이 2000달러(약 300만원)로, 가족을 동반한 부모가 70%를 차지하는 등 일반적인 디지털 노마드와는 완전히 다른 프로필을 가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덜 일하고 덜 벌더라도 더 느리고 사회에 기여하는 삶을 추구하는 것으로 보이네요.
디지털 노마드에게 필요한 것은?
제 분석으로는 이러한 슬로마드의 출현에는 기존 디지털 노마드가 전 세계 지역 사회에서 받는 비판이 한몫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디지털 노마드는 주로 선진국 시민들이 많은데요. 이들이 상대적으로 물가가 저렴한 개발도상국 도시로 이주하면서 현지 주택가격을 상승시키고, 지역에 대한 존중이 부족한 태도를 보인 사례가 누적되면서 현지인으로부터 안티 디지털 노마드 현상을 일으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디지털 노마드로 살아가는 데 개인적인 문제도 많이 발생하는데요. 정서적 외로움, 친구 가족으로부터의 고립, 계속해서 이동해야 하는 노마드간의 커뮤니티 형성 어려움, 납세나 보험, 자녀의 의무 교육, 고용 불안정성 등 문제점은 매우 다양합니다.
장점으로는 새로운 스타트업을 시도하는 디지털 노마드의 유입은 현지에 새로운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인구 소멸이 진행되는 마을을 활성화시키는 등 주로 국가 차원의 장점이 많습니다. 따라서 세계 각국에서는 리모트 워커가 장기 체류할 수 있는 허브 시설을 건설하고 비자제도를 신설하는 등 다양한 시책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세계 각국은 디지털 노마드 비자와 장기 체류 프로그램을 잇달아 도입하고 있습니다. 한국도 2024년 1월 1일부터 디지털 노마드 비자 제도를 시작했고요. 고소득 원격 근무자에 한해 최장 2년간 체류할 수 있는 허가 제도입니다. 일본의 경우 한국을 강력한 경쟁상대로 보고 있으며, 2024년 3월부터 6개월짜리 비자 제도를 시작합니다.
마치며
살펴본 것처럼 디지털 노마드의 유형은 과거 IT 종사자에 한정되었던 것과 달리 굉장히 세분화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디지털 노마드를 대상으로 한 정책을 검토할 때는 기존의 원격근무 인프라 외에도 패밀리 워케이션, 여성 전용 워케이션 등 다양한 니즈에 부합하는 인프라를 고려해야 합니다.
디지털 노마드가 요구하는 사항은 대체로 비슷한데요. 자국보다 저렴하고 안전하며, 기후가 좋은 곳에서 빠른 와이파이를 쓸 수 있는 환경을 희망합니다. 부수적으로는 집과 같은 편안함과 편의성, 엔터테인먼트 요소가 있습니다. 서울을 비롯한 한국의 대도시는 편의성과 즐거움 면에서는 매우 높은 지수를 기록할 수 있지만, 높은 물가와 여성 치안 면에서는 다른 나라에 비해 매우 떨어집니다. 이러한 단점을 근본적으로 개선할 때, 세계적인 디지털 노마드 성지가 될 수 있을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