팟캐스트 ‘김다영의 똑똑한 여행 트렌드’를 유튜브 채널로 옮겨오기 시작한 건 2022년부터다. 하지만 유튜브 채널은 그 해 내내, 전혀 성장하지 않았다. 여행업계 종사자를 대상으로 하는 기존의 팟캐스트 포맷을 그대로 유지했기 때문이다. 유튜브에서는 폭넓은 시청자를 위한 내용으로 채널 확장성을 높여야 한다는 건 알았지만, 팬데믹 이후 여행산업 전체가 송두리째 달라지는 시점에 도대체 무엇부터 다루어야 할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그러던 중, 콘텐츠 기획의 힌트는 너무나 우연히 찾아왔다.
새로운 여행의 시대, 우연히 발견한 크루즈의 장점
친구들과의 연말 모임에서 뜻밖의 이야기를 들었다.
친구 1 “크루즈로 지중해 2주 동안 다녀왔는데, 80만원 밖에 안 들었어. 얘들아. 크루즈 여행 진짜 좋아. 꼭 해봐”
나, 친구 2, 3 “뭐? 크루즈로 지중해 2주? 몇 천만원 드는거 아니야?” “80만원이 어떻게 가능해?” “크루즈는 우리 부모 세대가 가는 여행 아니야?”
친구 1 “아니야. 직접 구매하는 가격은 저렴해. 내가 다녀온 상품은 이건데….(후략) “
해외여행을 20년 가까이 해온 내게도 크루즈는 너무 생소한 여행법이었다. 일단 우리나라를 모항으로 한 글로벌 크루즈가 없고, 대부분 미국과 유럽에서만 운항을 하기 때문에 서구 소비자의 편의에 최적화된 여행상품이 대부분이다. 한마디로 한국인 입장에서는 접근성이 너무 안 좋은 여행이다. 그래서 나도 이제까지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크루즈를 다녀온 친구는 유럽을 크루즈로 여행해보니 체력적으로 정말 편하다고 했다. 항공과 기차 등 육로 이동으로 인한 에너지 소모가 전혀 없이, 매일 새로운 나라와 새로운 도시를 구경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크루즈가 시니어를 위한 여행으로 많이 알려진 것이다.
하지만 체력 문제와 여행 편의성은 나를 포함한 한국의 30~40대에게도 매우 솔깃한 장점으로 다가온다. 사실 경제활동으로 시달리다가 모처럼 해외여행을 가려고 보면, 패키지는 패키지대로 너무 빡세고 자유여행은 준비할 여력도 없다. 그런데 3040은 스마트폰 활용에 능하다. 그래서 이동에 대한 체력 소모를 크루즈가 줄여주면, 기항지 관광은 비싼 옵션 투어가 아니라 스마트폰으로 택시를 호출하거나 대중 교통과 로컬 투어를 적절히 활용해서 훨씬 똑똑하게 자유여행을 즐길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이 친구도 그렇게 크루즈 여행을 하고 있다. 요약하자면 패키지의 편리함과 자유여행의 장점을 모두 갖춘 여행이 될 수 있다. 여기에 가성비까지 갖춘다면, 완벽에 가까운 여행 아닌가.
마침 팬데믹이 끝나고 보복 소비라는 단어가 매체를 장식하던 2023년 초, 여행업계에는 전염병에 대한 마지막 두려움과 현금 여력을 동시에 가진 프리미엄 소비자가 몰려들고 있었다. 홈쇼핑에서 크루즈나 스위스 기차여행을 끼워서 800만원부터 천만원 대까지 판매하는 럭셔리 패키지가 수백 억 매출을 내던 때가 이 무렵이다. 그래서 집에 돌아와 크루즈에 대해 알아보니, 상품가와 크루즈 단품 가격의 갭이 심하게 벌어지고 있었다. 이거다 싶었다.
유튜브 채널을 새롭게 시작하기로 마음 먹고 올린 첫번째 콘텐츠의 반응은,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이었다. 그제서야 유튜브라는 도구를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도 감을 잡을 수 있었고, 팬데믹을 거치고 여행업계가 완전히 재편되면서 종사자가 아닌 소비자에게도 많은 정보가 새롭게 필요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 영상을 계기로 현재 구독자 3만 명 규모의 유튜브 채널을 만들 수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엇보다, 그동안 전혀 관심이 없었던 크루즈 시장의 거대한 규모와 글로벌 여행업계에서 차지하는 위상과 포지션에 대해 눈을 뜰 수 있었다. 또한 정보의 심각한 비대칭성을 이용해 얼마나 많은 스캠(사기)성 사업이 횡행하는지도 알게 됐다. 이 부분은 나중에 별도로 다뤄보기로 하고, 크루즈 콘텐츠를 다루면서 발견한 ‘한국에서 크루즈 여행이 대중화되기 어려운 요인’을 세 가지 정도로 정리해 본다.
그럼에도, 한국에서 크루즈 여행이 대중화되지 못하는 이유
첫번째, 일단 글로벌 TOP4 크루즈 컴퍼니(카니발, 로얄 캐리비안, MSC, 노르웨지안)는 공통적으로 한국 시장에 제대로 된 B2C 마케팅을 거의 하지 않고 있다. 그들 입장에서 중요한 시장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반면 일본 시장에는 매우 적극적이다) 물론 일부 회사는 한국어 총판 사이트는 운영하고 있으나 제대로 운영하지 않는 사이트도 꽤 보이고, 광고나 소비자 커뮤니케이션 채널에도 적극적이지 않다. 그러다 보니 소비자도 크루즈 브랜드 인지도가 미미한 수준이다. 여행사의 기획 상품을 그냥 믿고 선택할 수밖에 없다. 내가 타는 배가 몇 톤짜리인지, 부대시설은 타 배에 비해 어떤지, 캐빈 상태는 어떤지 등을 알고 예약하는게 아닌 것이다.
두번째, 크루즈 여행기획 분야에 인재가 양성되는 시스템이 거의 전무하다. 실제로 한국해양수산개발원이 2017년 내놓은 ‘크루즈산업의 일자리 창출 규모와 정책과제’ 연구 보고서에는 ‘크루즈 인력 육성에 있어 크루즈 관계자들이 지금 부족하다고 느끼는 인재는. 단순 노무직 선원(승무원)보다는 크루즈 상품을 관리·운영하는 미들 클래스’라는 대목이 있다. 현 시점에서 전 세계 크루즈를 두루 경험해보고 상품을 기획해본 전문가는 극소수일 것이며, 관련 책도 찾아보면 씨가 마른 수준이다.
찾아보니 크루즈는 여행 가이드북마저도 별로 없다. 2010년 이후 출간된 여행 카테고리의 크루즈 도서는 알라딘 기준 10여 권 남짓이다. 이런 척박한 지식 토대에서, 해외(아웃바운드) 경험이 축적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크루즈 산업 인재가 양성되길 바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항상 이야기하지만 아웃바운드를 ‘경상수지 적자’ 취급하면 안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인바운드 관광업에 기여하는 다수의 인재들은 대부분 수많은 해외여행을 통해 유관 경험을 쌓은 이들이다. 나 역시 그 중 한 명이다.
세번째, 크루즈는 유럽이나 미주 등 장거리 여행을 수반해야 하는, 현실적인 장벽이 높은 여행이다. 무엇보다 크루즈 여행이 활성화되려면 현재의 노동 환경에 커다란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 작년과 달리 내가 ‘워케이션’ 키워드에서 관심을 돌린 이유도, 주 52시간제 마저도 흔들리는 마당이라면 워케이션은 절대로 대중화될 수 없으며 정책 키워드로만 쓰이게 될 것으로 예상했다. 크루즈 여행 역시 기본이 1주일 이상 코스가 많고 앞뒤로 꽤나 여유일자가 필요한 여행이다. 따라서 한국처럼 휴가일수가 적은 나라에서는 가장 파워풀한 지불의사와 스마트폰 검색력을 가진 3040 세대들이 크루즈 여행에 쉽게 뛰어들 수가 없다. 경제활동 인구의 과반을 차지한 MZ, 그 중에서도 경제력이 가장 높은 밀레니얼 세대가 들어오지 못한다면 그 어떤 산업이든 대중화되기 어렵다.
실제로 내 유튜브 채널에서 가장 주목도가 높은 콘텐츠는 단연 크루즈다. 그만큼 크루즈 여행에 눈을 뜨는 소비자가 크게 늘어나고 있다는 반증이다. 그러나 크루즈 콘텐츠의 주 시청층은 50~70대다. 시간적, 금전적 여유는 있으나 온라인 활용력이 평균적으로 가장 낮은 세대다. 심지어 외국 사이트는 차치하고 항공과 숙박도 내 손으로 예약해본 적 없는 이들이 수두룩한데, 직구는 말할 것도 없다.
크루즈는 단지 탑승해서 바다 구경을 하는게 전부가 아니다. 서구권을 중심으로 발달한 크루즈 여행의 저녁 프로그램에는 사교와 네트워킹이 그 중심에 있다. 뿐만 아니라 출발 항구까지 알아서 찾아가는 과정 & 각 기항지별 자유여행을 위해서는 스마트폰 활용이나 언어 실력 중 하나는 확실하게 받쳐줘야 가능하다. 둘다 어려운 시니어 세대에게는 막대한 마진이 붙은 패키지 외에는 선택지가 별로 없다. 적립형 여행 등 수많은 스캠 사업들이 바로 이런 점을 악용하는 것일게다.
마치며
그동안 유튜브 채널에서 크루즈 콘텐츠를 다루면서 느낀, 한국 소비자들의 특징과 현황에 대한 단상을 기록해 보았다. 이미 영미권에서도 크루즈는 더이상 시니어의 전유물이 아니라 젊은 여행자들의 테마형 럭셔리 여행으로 떠오르고 있다. 한국에서도 적절한 마케팅과 노동환경 변화가 맞아 떨어지는 날이 온다면 큰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계속해서 연구해볼 예정이다. (이미 인공지능의 너무 빠른 발달로 인해, 노동환경은 불가피하게 개편될 조짐도 있어 보인다.)
특히 개인적으로 주목하는 분야는 최근 영미권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워크숍과 크루즈의 결합 모델이다. 디지털 노마드 전용 크루즈, IT업계 종사자만 탑승하는 크루즈 등 젊은 층을 대상으로 한 업종별 크루즈가 굉장히 많이 나오고 있다. 이렇게 뚜렷한 테마와 목적을 가진 크루즈 여행에 관심이 많아서, 향후 계속해서 팔로우업하고 트렌드를 전달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