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히치하이커 대표 김다영입니다.
상반기에는 여행 인문학 강의로 전국 일주를 하다시피 했는데, 하반기에는 여행업계 교육과 특강을 전국 곳곳에서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이질적인(?) 프로젝트를 하나 꼽자면, 10월에 대전 로컬여행 콘텐츠 제작자 양성 과정을 기획 진행했던 일입니다.
이 교육은 처음으로 ‘로컬’ 분야에서 통으로 교육을 맡아서 기획부터 강의까지 다 했던 일이라, 저도 하면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는데요. 특히나 대전이라는 도시에 대해 좀더 깊이있게 이해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대전에 살고 계신 일반인 분들 중에서 면접을 통해 양성 과정에 지원하신 분들을 대상으로, 일주일이 넘는 시간동안 즐겁게 교육을 하면서 현장 실습까지 야무지게 마쳤는데요. 이 과정을 기록차 정리해 두려고 합니다.
대전 로컬여행 콘텐츠 제작자 양성 과정 (주최 : 한국관광공사) – 10/12~20일
교육의 취지와 목표
여행 콘텐츠 제작자 양성 교육은 한국관광공사에서 신중년(만 50~64세) 및 경력보유여성 대상 교육인데요. 이 교육의 목표는 놀랍게도 ‘일자리 창출’이라고 합니다.
교육을 맡게 된 입장에서는 가장 난감한 교육이 ‘불가능한 목표’를 표방하는 교육입니다. 중장년층 대상으로 교육을 하면서 일자리까지 창출하라니, 게다가 로컬 여행은 애초에 민간 일자리 자체가 많이 형성되지도 않은 분야죠. 국가도 민간도 못한 지역 관광 일자리 창출을 10일 짜리 교육보고 하라는 건, 애초에 불가능에 가까운 미션입니다.
하지만 온갖 조건이 붙은 여행업계 교육 경험이 오래 쌓이다 보니, 이렇게 까다로운 교육 업무는 주로 저에게 의뢰가 오는 편입니다. 저 역시 평소 로컬 분야 교육에 대해 의구심이 있었습니다. 관광 분야에서 ‘로컬’이 붙은 공공 교육은 ‘로컬’만 가르치거나 혹은 ‘관광’만 가르치는 교육이 대부분입니다. 실질적으로 디지털 플랫폼을 도구삼아 자신만의 돈버는 기회를 만들어주는 로컬 여행 호스트 양성 교육은 전무한 상황이죠. 이번 기회에 대전을 모델로 해서 제대로 된 로컬관광 양성 교육을 만들어보고 싶었습니다.
커리큘럼
저는 총 10회차 교육 중에서 실제 로컬 여행 콘텐츠 제작에 해당하는 총 6회차 강의, 하루 5시간씩 총 30시간 교육을 담당했습니다. 나머지 4회 교육에서는 소셜미디어 마케팅과 카드뉴스 제작법 등의 실무 교육이 이루어졌습니다. (타 강사님들이 강의)
제가 설계한 로컬여행 제작자(여행 호스트) 양성과정의 커리큘럼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 교육 과정의 모든 참가자는 조별, 개인별 각각 하나씩 대전을 주제로 테마 투어 상품을 만들어 마지막 날에 발표를 해야 합니다.
1회차 | 로컬 여행의 주요 트렌드
– 국내외 여행산업의 전반적인 트렌드를 살펴보고, 로컬여행의 위치와 역할, 전망 학습하기 |
2회차 | 로컬 여행 제작 및 유통 사례
– 로컬 여행상품의 다양한 유형을 국내 최신 사례를 중심으로 학습하기. |
3회차 | 로컬 콘텐츠 발굴하기 (강의 + 실습)
– 지역 스토리텔링형, 취미/재능형, 체류형 등 로컬 콘텐츠의 유형을 알아보고, 개 인맞춤형 로컬 콘텐츠 발굴해 보기. |
4회차 | 로컬 여행 콘텐츠 기획하고 온라인에 론칭하기 (강의 + 실습)
– 개인별 유형에 따라 발굴한 로컬여행 콘텐츠를, 상세 기획하고 구체화하기 – 기획 유형에 맞는 플랫폼을 선택하고, 해당 플랫폼에 판매자로 가입해보기 |
5회차 | 로컬 여행, 직접 체험해 보기 (현장 실습)
– 같은 장소를 고전적인 투어(가이드) vs. 디지털 투어(리얼월드)로 각각 체험해 보고 리뷰하기 |
6회차 | 로컬 여행 플랫폼 콘텐츠 기획 및 보완하기 (실습 및 결과 발표)
– 3~4회차에 기획한 조별 투어 콘텐츠 발표하고 피드백 나누기 |
매일 수도권에서 대전으로 출퇴근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지만, 30여 분의 수강생들은 열정이 넘치셨습니다. 여행 쪽에서 일하시던 분은 한 분도 안 계셨고요. 모두 각자의 삶을 열심히 사시다가 여러 이유로 경력이 잠시 중단되거나, 혹은 현재 하는 일에 관광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보태어 시너지를 내고 싶은 전문가 분들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특히 공방을 운영하시거나 예술가로 활동하시거나 건축/메이크업 등 특정 분야 업을 가지고 계신 분들은 교육 내용에 엄청난 만족도를 나타내셨는데요. 글로벌 플랫폼이 이렇게나 발달되어 있고, 자신이 하는 일에 로컬 관광을 결합하면 새로운 수익모델을 창출할 수 있었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으시더라고요. 그래서 수업을 듣는 도중에도 이미 판매자로 등록해서 투어상품을 등재하는 분들을 만날 때마다, 제가 추구하는 교육의 목표는 실질적인 비즈니스(수익) 창출에 있음을 새삼 실감했습니다.
저는 로컬 크리에이터를 양성한다는 지자체 교육들을 보면서, ‘로컬 크리에이터’를 어떻게 정의하고 있으며 어떤 비즈니스 주체를 양성하려고 하는지 늘 궁금했습니다. 물론 지역 기념품을 만들거나 먹거리를 만드는 소상공인도 중요한 로컬 비즈니스 주체이긴 하지만, 관광 분야에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지역 가치를 발굴해 자신의 직업적/개인적 강점과 결합해 투어를 만들 수 있는 경쟁력 높은 투어 제작자가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자체가 지원이라도 해주지 않으면 생존조차 어려운, 단체 여행과 관급 사업으로 근근히 생존하는 ‘여행사’ 말고요.
5일차 현장 실습 장소로는 고민 끝에 소제동 일대 & 옛 충남 관사터를 문화공간으로 만든 ‘테미오래’를 선정했습니다. 오전에는 소제동 일대를 자유롭게 탐험하면서 소위 ‘MZ세대의 인증샷 스팟’ 장소를 직접 찾고 사진으로 기록하는 미션을 드렸고요. 테미오래에서는 문화관광해설사 분의 가이드 투어를 들어보고, 리얼월드의 ‘사라진 밀가루를 찾아서‘라는 디지털과 결합한 몰입형 체험을 해 보았습니다.
제가 같은 장소에서 일반 가이드 투어와 디지털 미션 투어를 동시에 체험하는 실습을 기획한 이유는, 여행자 입장에서 수동적으로 설명만 듣는 가이드 투어의 단점을 직접 느껴보시라는 게 주요 취지였습니다. 해설사 분이 워낙 설명을 잘 해주시긴 했으나, 역시 1시간 여의 설명이 계속 이어지자 지루함이 찾아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슬슬 자리를 이탈하시는 분들도 늘어났고요.
그런데 반전은, 중장년 세대에게는 몰입형 체험도 그다지 좋은 반응을 이끌어내지 못했다는 겁니다. ‘너무 어렵다’, ‘기능 구현이 잘 안된다’, ‘테미오래의 역사적 배경을 이해하는 데 오히려 방해가 되는 콘텐츠다’ 등등 다양한 피드백을 주셨습니다. 물론 게임 자체의 완성도나 역사적 배경 정보의 부족 등도 영향이 있겠지만, 모바일에 친숙한 젊은 세대와 모바일을 어려워하는 중장년층의 몰입형 체험에 대한 선호도는 크게 차이가 날 수 밖에 없음을 체감했습니다.
마치며
제가 가장 놀랐던 날은 교육 마지막 날이었습니다. 다들 조별로 1주일 넘게 토론을 열심히 하시며 교육장 인근의 중앙시장으로 원정 취재까지 다녀오시는 등 열심히 하셨던 건 알고 있었지만, 대전이라는 도시를 이렇게 다양한 콘텐츠로 멋지게 투어 상품을 만들어 내실 줄은 몰랐습니다. 이런 날 가장 교육의 큰 보람을 느끼게 되는 것 같아요. 미식/생태/역사라는 3가지 주제로 조를 나누어 진행했던 것도 신의 한 수였습니다. 각 조가 뚜렷하게 색깔이 있는 대전여행 상품을 만드셨더라고요. 개인 미션도 놀라운 수준이었습니다.
교육 첫날, 적어도 제 수업에서만큼은 대전을 ‘노잼도시’라 생각하지 말라고 당부 드렸습니다. 그러자, 쉬는 시간에 공기업에서 은퇴하셨다는 한 어르신 수강생이 다가와 그러셨죠. ‘대전은 정말로 볼 게 없다고, 대전을 잘 모르시는 것 같다’고요. 저는 조용히 ‘그건 선생님 생각입니다.’라고 냉정하게 말씀드렸죠. 그리고 교육 마지막날, 저에게 대전은 가망이 없다고 하셨던 어르신은, 본인의 직업적 전문성을 한껏 반영한 멋진 교육형 투어를 만드셨습니다. 지금 당장 판매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죠.
이제는 일자리에 대한 정의도 달라지고 있습니다. 각자가 본인의 열정과 강점을 활용한 일을 하면서 지역 발전에도 기여할 수 있다면 그보다 좋은 직업이 있을까요? 지금 관광업에서 일어나고 있는 거대한 디지털 전환 속에서 생겨나는 기회를, 모든 세대가 접근할 수 있도록 돕는 교육을 앞으로도 계속 만들어야겠네요. 올해 가장 힘들었지만 즐거웠던 프로젝트 중 하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