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두 권의 책(여행의 미래, 여행을 바꾸는 여행 트렌드)를 통해 단순한 여행 정보 생산은 포털 서비스의 먹잇감이 될 뿐이라고 강조해온 바 있습니다. 여행 크리에이터가 내 여행 리뷰나 여행 정보를 나열하는 형태로 블로그나 인스타 활동을 이어가면 AI에 의해 수익모델이 대체되는 것은 시간 문제입니다.
최근 익스피디아의 행보를 통해 이러한 저의 예측은 생각보다 더 빠르게 현실화되고 있습니다. 익스피디아가 인스타그램과 함께 미국에 베타 출시한 AI 여행 릴스 분석 서비스는 릴스 크리에이터에 대한 보상 체계가 전무하다는 점에서, 여행 콘텐츠 산업의 변화 방향을 보여주는 중요한 지표입니다. 히치하이커는 인스타그램에서 직접 이 기능을 사용해 보고, 향후 변화를 전망해 보았습니다.


익스피디아의 새로운 AI 기능 ‘트립 매칭’ 서비스
익스피디아는 최근 ‘트립 매칭(Trip Matching)’이라는 베타 서비스를 출시했습니다. 이 서비스는 인스타그램 사용자가 여행 릴스의 링크 주소를 복사해 @Expedia 계정에 DM으로 공유하면, AI가 해당 영상을 분석해 그 장소에 대한 여행 일정과 예약 정보를 제공하는 무료 서비스입니다. 이 서비스를 통해 인스타그램 사용자들은 소셜 미디어에서 발견한 여행의 영감을 즉시 실제 여행 계획으로 옮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현재 베타로 미국에서만 서비스가 시행되고 있지만, 직접 서비스를 사용해 보기로 했는데요. 좀더 정확한 답변을 받아보기 위해 영어 보이스오버가 있고 릴스 본문에 장소 정보가 기재된 해외 크리에이터의 릴스를 선택해서 보냈습니다. 해시태그로 DM 창을 연 후 여행 릴스 주소만 넣으면 약 10~20초 후에 자동으로 분석 결과가 DM으로 발송됩니다.
결과에서는 해당 영상 속에 등장한 가볼 만한 장소들을 소개하는 것은 물론, 그 주변의 추천 호텔 링크까지 함께 제공했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마지막에 여행 일정까지 세세하게 짜서 제공한다는 점이었습니다. 당연히 익스피디아가 노리는 것은 호텔과 항공 등 여행 상품의 판매겠죠. 생각보다 정확하게 주변 지역 호텔을 추천해 주는 게 놀라웠습니다.
크리에이터 경제와의 충돌, 원인은 무엇?
그러나 이 서비스에는 치명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이 모든 과정에서 원 릴스 제작자에게 돌아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점입니다. AI가 분석하는 콘텐츠를 만든 크리에이터는 자신의 콘텐츠가 익스피디아의 예약으로 이어져도 어떠한 보상도 받지 못합니다. 콘텐츠 생산자들에게 보상 없이 그들의 콘텐츠를 활용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양질의 여행 콘텐츠 생산을 저해할 수 있습니다.
콘데 나스트(Condé Nast)의 5월 13일자 보도에 따르면, 익스피디아는 이 AI 도구를 통해 예약이 이루어져도 원 콘텐츠 제작자인 크리에이터에게 어떠한 보상도 제공하지 않을 것이라고 명확히 밝혔습니다. 익스피디아 대변인은 “트립 매칭을 통해 인스타그램에서 여행자들이 제출한 공개 릴스를 기반으로 AI가 여행 추천을 제공할 것“이라며, 크리에이터 보상 계획이 없음을 확인했습니다. 즉 릴스는 이미 공개된 정보이므로, 보상해줄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이는 불과 몇 주 전 익스피디아가 ‘크리에이터 트래블 숍 (Creator Travel Shops)’를 발표하며 크리에이터 협력을 강조했던 레토릭과는 완전히 모순된 행보입니다.
향후 인스타그램 릴스는 단순한 영상 콘텐츠를 넘어, AI 기술을 활용해 즉각적인 구매와 예약으로 이어지는 강력한 커머스 도구로 자리매김할 가능성이 큽니다. 또한 이들 플랫폼이 AI를 활용해 콘텐츠에서 바로 구매로 연결되는 경로를 직접 만들어가고 있어, 단순 정보 나열식 콘텐츠는 크리에이터에게 수익을 가져다주기보다 플랫폼과 AI 서비스의 중간재로 전락할 위험이 큽니다.
익스피디아의 트립 매칭 서비스는 여행 콘텐츠를 분석해 자사의 예약 시스템으로 연결하는 과정에서 원 콘텐츠 제작자에게는 어떠한 경제적 보상도 제공하지 않고 있는데요. 만약 다른 여행 예약 플랫폼들도 유사한 서비스를 도입하게 되면, 단순 정보 제공형 여행 콘텐츠는 그 자체로 수익을 창출하기 어려워질 것입니다. 이미 미국에서는 익스피디아의 이 서비스가 상당히 주목받고 있어, 부킹닷컴 등 경쟁사 도입은 시간문제라고 봅니다.
원래 인스타 DM을 이용한 AI 맞춤형 여행정보 서비스는 히치하이커닷컴이 몇 차례 소개했던 뷰티풀 데스티네이션에서 선보였던 dm 챗봇 기능과 거의 유사한데요. 상품 데이터를 가지고 있는 플랫폼이 직접 이 기능을 도입했으니 변화는 이미 코 앞에 온 것입니다.
마치며
여행 산업에서 소셜미디어와 AI의 결합은 분명 흥미로운 가능성을 제시하지만, 익스피디아의 이번 행보는 여행 콘텐츠 산업이 직면한 근본적인 문제를 잘 보여줍니다. 특히 커머스 플랫폼으로의 전환을 꾀하고 있는 네이버와 인스타그램이라는 두 플랫폼에 의존하고 있는 여행 크리에이터들은 더 늦기 전에 자문할 때입니다. 지금 내가 생산하고 있는 콘텐츠는 누구를 위한 것일까? 라는 물음 말입니다.
콘텐츠 기반의 커머스 구축으로 생산자에게 수익을 더해주는 유튜브와 달리, 커머스 전용 플랫폼으로 전환하는 네이버와 인스타에서는 공동구매 등 강력한 커머스 소구력을 지닌 극소수의 크리에이터만이 큰 수익을 얻고 나머지 검색 최적화 계정들은 스스로 거대한 레드 오션을 만들고 있다고 봅니다. 지속가능한 크리에이터로 성장하려면 독창적인 시각, 깊이 있는 분석, 차별화된 경험 등 AI가 쉽게 모방할 수 없는 가치를 제공하는 사업 모델을 반드시 창출해야 하고 콘텐츠 플랫폼 또한 다변화하여 수익모델을 새롭게 구성해야 합니다.
